회원마당 - Fire Investigation Society of Korea -

회원동정 HOME   /   회원마당  /   회원동정
게시판 view
국내 최고 전기화재 감식 전문가, 김형일 한국화재감식학회 부회장을 만나다.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6-02-07
첨부파일 :

 - “화재 조사는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다. 집단지성으로 진실 찾아야

김형일 한국화재감식학회 부회장


화재 현장은 모든 것이 타버린 '검은 미궁'이다. 하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이가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충북본부 부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화재감식학회 부회장이자 소방청 국가화재특별조사팀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형일 부회장을 천안 한국화재감식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쿠팡 덕평물류센터,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대형 참사의 현장마다 어김없이 투입되었다. 미국화재폭발조사관(CFEI)이자 화재감식전문교수로서 30년 넘게 '전기'와 '불'의 상관관계를 파헤쳐온 그에게 대한민국 화재 조사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Q1. 한국전기안전공사 재직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기화재 조사 분야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십니다. 현재 어떤 활동을 주력으로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화재 현장이 주는 무언의 시그널을 해석하려 노력해온 엔지니어일 뿐입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전기가 어떻게 불씨가 되는지를 현장에서 체득했습니다. 현재는 한국화재감식학회 부회장을 맡아 감식 기법의 과학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소방청 국가화재정보 자문위원 및 특별조사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차원의 화재 원인 규명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특히 복잡해지는 현대 건축물의 화재 패턴을 분석하고, 후배 조사관들에게 제 경험을 전수하는 교육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Q2. 국내 화재 원인 중 가장 높은 23%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전기'입니다. 하지만 화재 후에는 흔적이 사라져 입증하기 가장 어렵다고도 하는데요. 부회장님만의 감식 철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전기 화재는 '보이지 않는 암살자'와 같습니다. 피복은 녹아 없어지고 전선은 끊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기는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바로 '단락흔(Arc bead)'입니다. 화재가 발생해서 전선이 녹은 것인지(화재 원인), 아니면 전선이 합선되어 불이 난 것인지(화재 결과)를 구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현장에 들어가면 그을린 전선 한 가닥, 콘센트 내부의 미세한 용융 흔적을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심증은 버리고 물증이 말하게 하라'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과학적 데이터 없는 추론은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Q3.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2020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당시 현장 감식에 참여하셨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주목했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천 화재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핵심은 '동시 작업의 위험성'과 '가연성 물질의 폭발적 연소'였습니다.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 폼 작업이 이루어지는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 불티나 전기적 스파크가 얼마나 치명적인 기폭제가 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저는 감식 과정에서 현장의 가설 전기 시설물들이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설치되지는 않았는지, 당시 사용된 공구들의 전기적 결함은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습니다. 결국 기본을 지키지 않은 안전 불감증과 구조적 문제가 결합했을 때, 작은 전기 스파크 하나가 거대한 폭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뼈저리게 확인한 현장이었습니다.“

Q4. 2021년 발생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역시 큰 이슈였습니다. 물류센터라는 특수성과 전기적 요인이 결합된 복잡한 현장이었는데요. 전문가로서 어떻게 분석하셨습니까?

"쿠팡 화재는 초기 진압 실패, 화재의 재발화, 전기적 요인이 결합된 전형적인 물류센터형 재난이었습니다. 광활한 공간에 적재된 수많은 물품이 연료가 되었지만, 그 시작점은 아주 작은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감식의 초점은 지하층의 콘센트와 선풍기 등 전기 제품의 과부하 및 트래킹(Tracking, 먼지 등으로 인해 전기가 흐르는 현상) 현상에 맞춰졌습니다. 24시간 돌아가는 물류 시스템 속에서 노후화된 전기 배선이나 멀티탭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입니다. 화재 하중이 높은 곳일수록 아주 사소한 전기적 발열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Q5. 2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 또한 감식을 맡으셨습니다. 당시 유독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에 대해 현장에서 무엇을 확인하셨습니까?

"현장을 조사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 '막혀버린 생명의 문'이었습니다. 화재 자체는 1층 천장의 전기적 요인으로 시작됐지만,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직접적인 원인은 '연기의 확산'과 '피난로 폐쇄'였습니다. 특히 2층 여성 사우나의 경우, 비상구 앞이 철제 선반 등으로 막혀 탈출이 불가능했고, 주 출입구 자동문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건물 내부의 수직 관통부가 방화 구획 없이 뚫려 있어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화재를 넘어, 시설 관리 부실이 빚어낸 명백한 인재(人災)였음을 현장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Q6. 분위기를 조금 바꿔서 놀라운 이력을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전세계 소방관들의 올림픽’ 제13회 충주세계소방관경기대회 수영 종목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를 획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문적인 식견뿐만 아니라 강인한 체력까지 겸비하셨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허허, 쑥스러운 과거입니다. (웃음) 사실 화재 감식 현장은 책상 앞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붕괴 위험이 있는 곳을 기어오르고, 무거운 잔해를 걷어내며 단서를 찾아야 하는 고된 '체력전'입니다. 머리로 하는 분석만큼이나 몸으로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평소 꾸준히 수영을 해왔는데, 당시 운 좋게 동메달까지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져놓은 체력과 도전 정신이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현장을 누비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감식 정신이 깃든다고 믿습니다.“

Q7. 마지막으로 한국화재감식학회 부회장으로서, 그리고 전기화재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화재 조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전문가 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화재 원인 규명은 결코 혼자만의 지식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변수와 복잡한 메커니즘을 풀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경험과 동료들의 데이터가 합쳐진 '집단지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한국화재감식학회와 같은 전문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학회에서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이 여러분을 진정한 전문가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저희 학회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저를 포함한 선배들이 여러분과 함께 진실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기자의 시각]

인터뷰를 마친 뒤 돌아오는 길, 김형일 부회장은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선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匠人)'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천 도의 화마 속에서 1%의 단서를 찾아내는 날카로운 전문성, 세계소방관대회 입상이 증명하는 철저한 자기관리, 그리고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따뜻한 인간성까지. 이 세 박자를 모두 갖춘 그가 버티고 있기에, 대한민국의 안전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현장과 강단을 오가며 '화재 조사의 등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