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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화재 현장, ‘디지털 트윈’ 스캔 보존 제도화가 시급하다.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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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이랜드 패션 물류센터 화재 사고


시공간의 한계 갇힌 화재 감식, 증거는 불길과 함께 사라진다

화재 현장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아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급격히 소멸한다. 불길이 진압된 직후의 현장은 붕괴 위험에 따른 안전 확보, 기상 변화로 인한 훼손, 그리고 조속한 복구와 청소를 원하는 소유주의 요구 등 다양한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불과 수일 만에 물리적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일쑤다. 화재조사 전문가로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사법적 분쟁이나 제조물 책임(PL) 소송이 본격화되었을 때, 정작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입증해 줄 현장 자체가 이미 파괴되어 2차, 3차 정밀 감식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현재의 단편적인 2D 사진과 몇 줄의 기록문서 중심의 보존 방식은 전소된 잔해 속에서 진실을 영구히 격리하는 한계를 지닌다. 현장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팩트를 보존할 혁신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가상 공간에 현장을 박제하는 디지털 트윈의 실시간 연동성

최근 미디어와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은 이러한 화재 조사의 고질적인 난제를 해결할 열쇠다.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현실의 사물을 3D 모델로 흉내 내는 그래픽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핵심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간의 유기적 동기화와 데이터의 실시간 연동성에 있다.

화재 초기 단계부터 고정밀 3D 레이저 스캐너와 드론을 현장에 투입해 공간 전체를 미크론 단위로 입체 스캔하고 박제하면, 물리적 현장이 철거되더라도 가상 세계 속에 완벽한 ‘쌍둥이 현장’이 영구히 보존된다. 조사관들은 언제든 가상 공간으로 재진입해 발화지점의 탄화 패턴을 분석하고, 단락흔이 발견된 전선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역추적하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재 확산 경로를 무한히 재현해 볼 수 있다.

입증 책임 강화와 과학적 화재 조사를 위한 법제화 과제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현장 스캔 보존은 단순한 기술적 시도를 넘어, 국가 화재 안전 인프라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소방청, 그리고 법사위 등 유관 기관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화재나 원인 미상의 복합 재난 발생 시 ‘디지털 트윈 기반 3D 공간 스캔 보존’을 의무화하는 법적 근거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수집된 3D 데이터가 법정에서 공식적인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표준화된 감식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전소된 폐허 속에서 화재 원인의 침묵을 깨우고 억울한 피해자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내는 일, 그것은 물리적 현장의 소멸에 굴하지 않는 디지털 트윈이라는 과학적 방어선을 제도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김효범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